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한 크루이프 (문단 편집) === 선수로서의 평가 === ||<-2>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DUTCH 14.webp|width=100%]]}}} || [[IFFHS]]는 크루이프를 20세기 유럽 최고의 축구 선수이자 펠레에 이은 20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 2위로 선정하였으며, 2002년 FIFA 선정 20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 순위에서도 마찬가지로 크루이프가 펠레에 이은 2위로 선정되었다.[* 참고로 마라도나는 IFFHS 선정 20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 5위, FIFA 선정 20세기 최고의 축구 선수 3위이다. 당시는 마라도나의 도핑 여파가 아직 남아있던 시기이기도 해서 평가가 박했다.] 또한, 월드사커에서 뽑은 20세기 최고의 선수에서도 펠레, 마라도나에 이은 3위를 차지하는 등 [[https://m.blog.naver.com/PostView.nhn?blogId=mgomez33&logNo=220832951328&proxyReferer=https%3A%2F%2Fwww.google.com%2F|20세기 말 세계 언론들이 뽑은 역대 축구 선수 순위 합산에서 펠레, 마라도나에 이은 3위를 차지하였다.]] 각각 소속된 네덜란드, 에레디비시, 아약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바르셀로나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며[* 보통 [[리오넬 메시]] 다음가는 평가를 받는다. 다만 이 평가는 어디까지나 '선수'로써의 평가로 크루이프는 감독으로써 바르셀로나에 라 마시아를 정착시킨 인물이기도 하므로 '축구인'으로써 바르사에서의 평가는 메시와 동등하다고 할 수 있다.] 축구 역사에서 유럽인 축구 선수 중 최고의 선수 중 한 명[* [[알프레도 디 스테파노]], [[프란츠 베켄바워]], [[지네딘 지단]], [[크리스티아누 호날두]] 등과 함께 거론된다.]으로 평가받는 선수이다. 요새는 [[토탈 풋볼]]로 인한 혁명가 이미지 때문에 선수로써 크루이프를 과소평가하는 억측이 나오고 있지만, 선수 시절 기량만으로도 마라도나의 등장 이전까지 펠레, 디 스테파노에 가장 필적한다는 평가를 받았던게 크루이프다. 그는 1970년대 당시 발롱도르 3회 수상, 유러피언컵 3연패 등 뛰어난 커리어를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서 당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다. 크루이프가 활약했던 1970년대에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인 [[프란츠 베켄바워]], 축구 역사상 최고의 골잡이인 [[게르트 뮐러]] 등 걸출한 선수들이 대거 활약했던 시대였다. 이러한 베켄바워와 뮐러를 각각 2인자와 3인자로 밀어내고 시대의 1인자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크루이프의 실력을 체감할 수 있다. 애초에 커리어부터가 리그 우승 10회, 챔스 3연패, 트레블, 득점왕 트레블, 발롱도르 3회 등 대단한 수준인데, 그 중 리그 우승 10회, 발롱도르 3회 수상이나 챔스 3연패 등은 현재 시점에서 보아도 경이적인 수준이며 그 팀을 이끈 크루이프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었는지를 증명하는 셈이다. 현재도 매우 높은 위상을 지니고 있다. [[https://m.ygosu.com/board/soccer/249800/?searcht=&search=&m3=real_article&frombest=Y&page=1|2017년 이후 각국 축구 전문지에서 매긴 순위 합산]]을 보면 펠레, 마라도나와 메시에 이은 4위를 차지했음을 알 수 있으며, 2017년 포포투와 부트발에서 뽑은 역대 TOP 100에서는 각각 4위와 3위를 차지하였다.[* 다만 부트발에서 뽑은 순위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. 다름 아닌 축구 황제 펠레가 크루이프에 밀린 4위이기 때문... 네덜란드 언론임을 감안하는 것이 좋다.] 2018년 포포투 필진이 뽑은 역대 TOP 5에서는 [[https://m.fmkorea.com/?top=Y&mid=football_world&page=55&document_srl=1795122838|펠레와 함께 가장 많은 1위 표를 획득하였으며 종합적으로는 메시, 마라도나를 누르고 펠레에 이은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.]] 과거 [[알프레도 디 스테파노]]와 20세기 유럽 최고의 축구 선수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. 1970, 1981년도 기자단 역대 베스트 11에서 크루이프는 디 스테파노에게 밀렸으며,[* 다만 1970년은 크루이프의 기량이 채 만개하기도 전이었다.] 1989년 [[명예 발롱도르|슈퍼 발롱도르]] 투표에서도 [[알프레도 디 스테파노|디 스테파노]]가 크루이프와 [[프란츠 베켄바워|베켄바워]], [[미셸 플라티니]]를 모두 제치고 수상하였다. 그러다가 20세기 말에 들어서는 세계 각지 언론사가 발표한 랭킹에서 크루이프가 디 스테파노에 조금씩 앞서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으며, 시간이 더 흐른 지금은 월드컵에서의 불운과 자료 부족, 디 스테파노의 명성이 대단했던 시기에 활동했던 전문가들의 사망, 은퇴 등으로 디 스테파노에 대한 평가가 더욱 떨어졌다. 그래서 그에 비해 자료가 상대적으로 많으며 '현대 축구의 상징'이라는 확실한 의미도 부여할 수 있는 크루이프 쪽이 대체로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. 현재는 국대 무관이라는 오명을 듣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, 국가대표를 조기 은퇴하여 단 두 차례의 국제 대회 출전 경력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[* 월드컵 1회, 유로 1회.] 클럽과 국가대표로서 모두 역대 최고 수준의 활약상을 보여주었다. 특히 [[1974 FIFA 월드컵 서독|1974년 월드컵]]에서는 무려 36회의 기회 창출을 기록했고, 이는 가히 독보적인 단일 월드컵 역대 최다 기회창출 기록이며,[* 심지어 크루이프는 월드컵 단 1회 출전으로 월드컵 올타임 베스트 11에도 선정되기도 한다. 월드컵 3,4회 출전한 유명한 선수들도 올타임 베스트에는 선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단 1회 출전으로 올타임 베스트에 뽑힌다는 건 그만큼 역사에 길이남을 엄청난 활약이었다는 뜻이다.] 다른 후보들은 월드컵, 리그, 유러피언컵(챔스)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한 전대미문의 업적을 이루어낸 베켄바워 대신 크루이프가 발롱도르를 차지했고 현재까지도 국대 무관이라는 비판은 전혀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점에서 그 활약상을 짐작할 수 있다. 에우제비오나 스토이치코프가 비록 4강에서 멈췄지만 엄청난 활약으로 팀을 멱살캐리했고 순수 퍼포먼스는 어지간한 우승자들을 씹어먹을 정도이기에 아무도 국대무관이라 뭐라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. 결국 유관/무관보다는 '''뭘 보여줬는가? 얼마나 활약했는가?'''가 핵심이다. 크루이프가 만약 74월드컵 결승전 딱 한경기만 잡았다면 [[펠레]]와 [[마라도나]]의 반열에도 오를법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니 그의 실력에 대한 당대의 평가와 1974년 월드컵에서의 임팩트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. ||<-2>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펠마메크디.png|width=100%]]}}} || 크루이프의 위상은 이미 역사상 최고의 축구 선수를 넘어 자국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위인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로, 2004년 네덜란드의 한 방송국에서 자국 위인 순위를 선정한 결과 무려 '''6위'''라는 엄청난 순위에 선정되기도 했다. 이는 동 조사에서 25위에 선정된 [[마르코 반 바스텐]]과 78위의 [[루드 굴리트]]를 가볍게 넘는 순위이며, 심지어 이는 '''[[안네 프랑크]], [[빈센트 반 고흐]]보다 높은 순위에 선정된 것이었다.'''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